990점이 목표인 나는 오늘도 토익을 쳤다. 이제 제법 매번 가는 시험장이 내 나와바리처럼 느껴진다. 시험장 거의 도착했는데 비가 한 두 방울 내린다. 우산이 없어서 냅다 달렸다. 비에 젖은 꼴로 영국언니와 호주오빠를 영접할 순 없잖아-그 언니는 내가 별로 안 좋아한다. 말투도 겁나 딱딱한데 가끔 듣는사람이 알아 듣거나 말거나 자기 신경질난다고 속사포로 말을 뱉어낸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을 나는 안 읽었지만 이언니는 한번쯤 읽을 필요가 있다- 고사장에 겨우 도착해서 숨 차는데 하필 또 3층이다. 다들 숨죽여 대기하는 정적속에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마지막으로 고사실에 입장하는 간만의 퍼포먼스.

노란색인지 주황색인지 누리끼리한 답안지. 뭐 하는 인간이냐, 토익 얼마나 쳐봤니, 영어 공부는 어떻게, 누구랑, 얼마나 했니, 근데 너 토익 왜 보니 하는 survey는 이미 수도 없이 fill out해줬는데 맨날 물어본다. 예전엔 성의있게 답변해주면 ets가 나를 어여삐 여겨 점수 좀 더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바램따위를 품은 적도 있지만 가산점은 개뿔, 그딴 거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므로 스킵.

파트1 1번부터 잠깐 뭐지 싶었다. 아저씨가 자기 키만한 널빤지를 안고(?) 계단을 내려오는 그림이었는데 이게 어떻게 box일까 싶었다. 평소에 박스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박스 모양이 아니라서 잠깐 당황. 지금 생각해보면 종이박스를 '평평하게 접어서' 들고 내려오는 거였을까. 내가 생각하는 박스를 옮기려면 아저씨 손모양이 이렇게 보여서는 안 되는데?나머지 abc가 아니니까 답으로 고르긴 하지만... 이젠 하다하다 박스 모양가지고 장난치는 ets를 탓해야 할까, 박스 모양에 대한 나의 편견을 탓해야 할까. 집에 돌아와 어제 온 택배 박스를 보며 기분이 묘해지는 하루.

990 찐고수들은 abc듣고 전부 x뜨면 d 듣기도 전에 벌써 마킹했을 듯. D까지 듣는 사치를 그들은 부리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쫄보라 늘 파트1이든 파트2든 선지 끝까지 다 듣고 마킹한다... 전에 한번 팟2에서 나대다가 개털린 적 있다.

오후 시험이라 덕분에 아침에 늦잠 잘 수 있었다. 이 부분은 ets에게 고맙다. 이 부분만 고맙다. 오늘 시험 rc도어질어질했다. 와이파이를 unlock한다는 게 무슨 상황인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오후 시험은 어렵다는 말이 돌던데 그 말은 참이다. 앞으로 오후 시험은 안 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