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한달하고 일주일 전..

원래 예정되어있던 비행편이 무려 하루 연기되고 장시간의 비행으로 지친 심신과 함께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였다..

원래 연결편이었던 비행편과는 비행지연으로 인해 엄청난 시간차가 발생하였고, 같은 동맹사인 대한항공편으로 비행편이 변경되었고, 변경된 여정표를 수령하기 위해 지정된 장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있는, 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부산 가는 표 여기서 찾는거냐고.. 영어로.. 뭐 여기가 한국이 아니니까 대수롭지 않게 영어로 그렇다고 간단하게 대답해주긴 했지만, 속으로는 이랬다.. "이런 써글 뇬 내가 한국인처럼 안 보이나, 영어한다고 폼 잡나" 뭐 이런 생각..

아무튼 변경된 여정표를 수령하고 나리타 공항 내에 있는 대한항공 카운터에서 발권을 하려고 줄을 서고 있었다..

이쁘장 하게 생긴 카운터 직원들을 멀리서부터 보면서 한국인일까 일본인일까, 한국인이면 돈은 한국에서보다 더 많이 받을까 똑같이 받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내 바로 앞에는 전의 그 여자가 서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카운터 직원은 일본인임을 알 수 있었다.. 이름표를 보고..

아무튼..

그 여자가 카운터 직원한테 여권이랑 여정표를 보여주자 카운터 직원이 발권을 해주면서 그 여자에게 묻는다.. baggage claim ticket 어딨냐고.. 그 왜 비행기 짐칸에 싫으면 영수증 비슷하게 주는 조그마한 스티커로 된 출력물.. 그 여자.. 분명 나한테 물어볼 땐 나름 유창한 발음이었다.. 근데 이 여자를 보니 무슨말 하는지 못알아먹고 "excuse me what'd you say?"를 연발하고 있다..

그렇다.. 한글로 옮겨쓰자면 원래 baggage 라는 것은 "배기쥐"에 가깝다.. 하지만 이 일본인 직원은 "바게지"라고 발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가 못 알아듣자 어눌한 한국말로 물어보기까지 한다..

나야 일본어를 오히려 영어보다 잘 하는 상황이니 그게 무슨 말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지만.. 그 여자.. 한참 어리버리하고 있길래 보는 내가 답답해서 한국말로 친절하게 말해줬다.. 수화물 영수증 보여주라고.. 그제서야 "아~" 하면서 여권을 뒤적뒤적거려 뻘쭘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내가 한국말을 하니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더 열받는다.. '아니 이뇬이 도대체 나를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뚜껑이 열리려 하지만 참는다.. 뭐 한 두번도 아니고..

그리고 이제 내 차례다..

분명히 나는 대한민국 여권과 함께 여정표를 제시했으나 이 카운터 여자.. 아주 자연스럽게 나에게 일본말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그렇다.. 앞의 여자도 그렇고 나를 일본놈 쯤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 알아먹으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곤 영어로, 난 "빌어먹을 일본놈"이 아니라고 하자 직원은 못알아먹은건지 당황한건지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나 일본놈 아니고 한국사람이에요." 우리말과 일본어로.. 이 여자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 뭐라고 할 입장은 못 될 터.. 아무튼, 그렇게 카운터 직원을 놀려먹고 무려 한시간씩이나 또 기다려서 부산행 비행기를 집어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아무튼, 한국말이 젤 과학적이고 표현도 다양하고, 개인적으로 최고로 아름다운 언어라 생각한다.. 다만 나라에 힘이 별로 없어서.. 영어가 워낙 강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영어를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일본놈들보단 훨씬 한국사람들이 영어를 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