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처음 텝스 본 사람입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위스콘신대(매디슨 캠퍼스) 3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서울대3학년으로 편입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진학 예정이라 텝스점수가 필요해서

시험을 보게 된 거구요.

나름 언어에 대한 감각도 있고 해서 영어공부를 따로 하지 않고 토익 3회 응시 모두 990 만점이었구요, 토플은 CBT 당시 280점대 후반을 꾸준히 받았었습니다.

(제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쓰는 글에 객관성을 더하기 위해 다른 시험 응시결과를 썼습니다. )

이번에 본 텝스는 높은 점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대학원 지원 최소기준만 충족하면 되었기 때문에 책을 사서 보거나 하는 준비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교수님과 입학에 대한 이야기가 완료 되었고 대학원 지원 최소기준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그 이상은 점수를 받을 자신이 있었고 사실 그래서 문제가 어떤 형식으로 나오는지도 모르고 간 건 사실이구요.

그렇지만 문제를 받고서는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텝스라는 시험이 어느 기관이나 기업에서 독점적으로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 실력을 측정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목적을 가지는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인 사람은 공부를 하고 안하고 여부에 관계 없이 일정범위 내의 점수가 나와야

그 시험의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청해 파트는 사실 나름대로 실제 생활에서 쓰이는 영어를 평가하려고 지문을 만드는데 신경을 쓴 듯한 느낌이었고, 어느 정도 외국에 거주한 사람이나 실생활에 쓰이는 영어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사람이 시험시간에 가질 수 있는 집중력을 테스트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문법이나 독해 파트는 그야말로 학원에서 꾸준히 훈련 받은 사람이 기계적으로 풀 수 있도록 문제를 낸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휘 역시 어떤 단어들은 뜻은 그 문장의 문맥상 맞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쓰이지 않는, 맞추기 어려운 단어들을 정답으로 해 놓은 것이 많았습니다.

또한 독해 파트는 영어 실력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형의 문제에 숙련된 사람을 가려내는 듯한 느낌이었구요. 독해 지문을 정독해도 답을 어렴풋이 가려낼 수는 있지만 중심내용이 그것이라고 딱 찝어 말할수는 없는, 문맥 파악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출제한 수준의 문제들이 몇문제 있었습니다.

문법 파트는 영어공부를 따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저도 완벽하게 무엇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답을 대강 찾아내기는 하였는데, 이 역시 실제 native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문법적 에러들을 정답으로 해 놓은 경우도 몇 개 있더군요.

한국사람들도 한국어 상에서 문법적인 측면을 완벽히 알아서 그 말이 어법상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쓰는 말과 뭔가가 달라서, 뭔가 이상해서 "너 그 말을 좀 어법에 틀린 것 같은데"

라고 하지 않습니까?

미국 사람들도 똑같습니다. 문법적으로 틀린거, 정관사 관사 이런거 찾아내라고 하면 못찾아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틀린 것은 아는거죠.

텝스가 실제 사용되는 영어를 얼마나 fluent 하게 쓸 수 있느냐에 목적이 맞추어진 시험이라면 사소한 차이에 정답이 결정되는 한국 문법책에만 나와있는 그런 것들을 출제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 듭니다.

저도 미국에서 오래는 아니지만 약 6년반정도의 거주 경험이 있고 native 까지는 아니지만 학문적으로나 일상 생활에서 전혀 어렵지 않은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제 옆에서 문제를 푸는 어느 중학생(어쩌면 고등학생)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독해의 후반 몇 문제는 풀지 못하고 첫, 끝문장만 읽고 답을 체크할 수 밖에 없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글을 제대로 정독하여 중심내용을 찾아내려 할 때보다 문제가 더 쉽게 풀리더군요. 그렇게 문제를 푸는 것이 이 시험에서 고득점을 하는 길이라면, 뭣하러 독해 지문을 5-6줄로 만들어 놓았는지, 그저 첫문장과 끝문장만 읽어야 한다면 그 두문장만 지문으로 주어도 괜찮은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어로 그런식으로 문제를 50개씩 출제하면 문제를 정확히 읽고 15분안에 풀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그것을 얼마나 빨리 풀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느냐, 문맥상의 분위기,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영어 시험으로 그러한 능력들을 측정하는데는 한계가 있는것이 사실입니다.(토익, 토플의 경우에 비추어 봤을 때)

그러나 텝스는 정말 저러한 목적에서 벗어나 그저 문제를 풀면서 오답률을 측정하는, 그정도의 시험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일반인들에게 텝스 문제를 들이밀면 그들이 다 900점 이상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시험에서 점수를 잘 못받거나 할 것 같진 않지만

텝스를 처음으로 보고 나서, 우리나라 최고의 교육기관이 출제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어 시험이라고 하기엔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목적에서 터무니없이 어긋나고, 너무나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