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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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은 '목화씨'를 몰래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에 처음 면직물 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거짓
*문익점 (1329~1398):고려시대 문신. 원나라게 갔다가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가져왔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슴을 걸고 목화씨를 붓대에 숨겨 가져와서
우리나라에서도 면직물 생산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는
어렸을 적부터 많이 듣고 배운 역사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라고?
문익점은 목화씨를 붓대에 숨겨 가져온 적이 없다.
원나라에서 목화씨는 반출 금지 품목이 아니었음!
원나라가 금지했던 품목 : 화약, 지도 등..
목화씨는 나라 곳곳에 널리고 널려, 반출 금지한 적이 없음
'문익점이 분국으로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얻어 가지고와서 심었다.
처음에는 재배 방법을 잘 몰라 거의 다 말라버리고 한 그루만 남았는데
세 해 만에 크게 불었다.'
<고려사, 문익점 열전>
'계품사 좌시중 이공수의 서장관(문익점)이 원나라 조정에 갔다가 돌아오려고 할 때에
목면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
<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붓대에 숨겨서 몰래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없음.
그렇다면 왜? 왜 이런 거짓 이야기가 이토록 유명해진 것일까?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지고 온 후 약 100여 년 뒤 '김굉필'이라는 문인이
문익점을 기리기 위해 썼던 시에서 유래한다.
'문공 익점은 진양 사람으로
천성이 어질고 바르며 학문을 좋아했네.
(중략)
가을 밭에 핀 눈같이 흰 꽃을 보았네.
꺾어 보고 갑절이나 좋아한 님은
'남몰래' 낭탁에 넣어서 돌아왔네'
-김굉필
이 한 편의 시로 인해 문익점이 죽음을 무릅쓰고 백성을 위해
'몰래' 목화씨를 숨겨온 위인으로 전해져 온 것.
또 하나의 거짓.
문익점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면직물 생산이 가능하게 된 것이 아니다.
2010년, 충남 부여에서 삼국시대 때 이미 사용되었던 면직물 발굴.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 때에도 면직물 생산이 가능했다는 기록이 있음.
그러나 문익점 선생께서 하신 일은 가히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몰래 가져온 것도 아니고 최초도 아니었지만
원나라에 갔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했다는 점,
우리나라에 면직물이 대중적으로 퍼질 수 있게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은
충분히 신화처럼 잘못 알려질만한 큰 사건.
우리 민족의 생활을 크게 바꿔놓은 문익점 선생의 행적은 마땅히 기억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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