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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프로젝트]왕 회장과 이 회장

나도 기자 | 조회 3546 | 추천 0
  • 200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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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문성일기자]지난 1977년부터 15년간 거함 현대건설호의 경영을 맡았던 이명박 시장은 당시 재계에서 왕 회장(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이후의 \'거목\'이란 명성을 얻었다.



지금도 현대를 얘기할 때 그를 빼면 얘기가 안될 정도로 그가 현대건설에서 남긴 족적은 실로 대단하다.



그가 왕 회장의 최측근 가신그룹의 선두란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만큼 이 시장은 이내흔(현 현대통신산업 회장)씨와 박세용(전 인천제철 회장)씨 등과 함께 과거 한때 왕 회장의 \'1세대\' 오른팔로 막강한 실력을 행사했었다. 특히 이 시장의 사업 추진력은 왕 회장과 \'판박이\'라고 불릴만큼 저돌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왕 회장과 일심동체로 일해왔던 그가 1992년 대선을 즈음해 현대를 떠났다. 동시에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만났다.



왕 회장은 통일국민당을 만들어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킨 이후 대통령후보로 나섰고 이 시장은 YS의 부름을 받고 민자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주군\'을 배신했다는 비난속에서도 그는 그의 사무실에 늘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뒀다.



이후 두 사람은 몇 차례 사적인 자리에서 만났고 왕 회장은 틈날 때마다 이 시장에 \'북방의 꿈\'을 함께할 것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 2001년 3월 왕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빈소를 찾은 이 시장은 오랜동안 감췄던 왕 회장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표현, 주변사람을 놀라게 했다. 결코 울지 않는 사람으로 각인돼 왔던 그가 눈물을 흘린 것이다.



실제 그는 \'6.3한일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 주도 혐의로 취업이 안될 때도 울지 않았다. 현대건설을 떠날 때도 그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서 당시 이종찬 전의원을 꺾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도 그의 눈가에는 한 방울도 맺히지 않았다.



1년전 불편한 다리를 만지며 \"임자(이 회장, 내 다리가 낳으면 소련 한번 같이 가자구\"했던 왕 회장이 떠올랐던 것이다. \"사업을 같이 했다고 정치도 같이 해야 하냐\"며 왕 회장을 곁을 떠났던 그였지만 이때만큼은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기업으로 성장한 현대건설맨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문성일기자 ssamddaq@money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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